겨레고전문학선집 2

열하일기(중)

양장 | 143×215 mm | 637 쪽 | ISBN 9788984281882

열하에서 황제와 티베트의 판첸 라마를 보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일기글과 청나라 학자들과 나눈 필담을 옮긴‘황교문답’,‘망양록’,‘ 곡정필담’들이 실려 있다. 과학, 사상, 역사, 음악을 넘나드는 필담에서 편견이나 금기가 없는 연암의 자유로운 사상을 만날 수 있다.

청소년~어른

대한출판문화협회 선정도서(2004) 한국출판인회의 선정도서(2004)

펴낸날 2004-11-15 | 1판 | 글 박지원 | 옮긴이 리상호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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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고전문학선집〉, 그 처음을 《열하일기》로 열었습니다!

옛부터 우리 겨레가 즐겨 온 노래와 시, 일기, 문집, 소설 들에는 지난 삶의 알맹이들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 북의 학자들이 쉽고 잘 읽히는 말로 풀어서 번역한 우리 고전 문학을 보리 출판사가 펴내게 되었다. 누구라도 즐겁게 읽는 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개인 문집으로 이규보, 이제현, 임제․권필, 조수삼․이상적, 김려, 홍량호, 유인석 들의 작품집을 낼 예정이고, 시집으로는 한시집, 시조집, 가사집, 가요집, 기행 시집 들을 준비하고 있다.

유충렬전, 옥루몽, 옥린몽, 옥포동기완록, 난초재세기연록, 창선감의록 따위의 소설과 전기 설화집, 패설집, 파수편, 천예록 같은 짧은 이야기 모음집도 목록에 들어 있다.

그 첫 번째 책으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펴낸다. 훌륭한 문학 작품인 데다가 과학과 예술, 새로운 사상과 미학론을 담은 최고의 책으로 《열하일기》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선집이, 겨레가 하나 되는 밑거름이 되고, 우리 후손들이 민족 문화 유산의 알맹이인 고전 문학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맛보고 이어받는 징검다리가 되기 바란다. 아울러 남과 북의 학자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면서 남북 학문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날이 하루라도 앞당겨지지 바란다.
이제 우리도 《열하일기》 완역본을 만날 수 있다!

2005년은 연암이 죽은 지 꼭 200년이 되는 해다. 연암 탄생 150주년에 맞추어 북한에서 《열하일기》 완역본을 냈는데, 남한에서는 연암 서거 200년을 앞두고 완역본을 내게 됐다.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철학과 사상, 과학과 음악, 정치와 문화, 실용과 논리를 자유롭게 펼친다. 이 책을 읽으면 왜 사람들이 조선의 중세가 이 책 한 권에서 끝장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1. 《열하일기》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청 나라 건륭 황제의 만수절을 축하하는 사신 일행에 어쩌다 함께 가게 된 연암은 빡빡한 일정과 아랑곳없이 혼자 온갖 풍류를 즐긴다. 먼저 북경을 다녀온 친구 홍대용을 내심 부러워했던 연암은 중국에서 좋은 벗들과 깊은 얘기를 나눠 보리라 작정했고, 한인과 만인을 가리지 않는 열린 태도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갖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열하’는 청나라 황제들이 여름 피서지로 썼던 곳인데, 조선 사신이 열하까지 간 것은 연암 때가 처음이었다. 오늘날의 하북성 북부, 열하강 서쪽에 있는 ‘청더〔承德〕’에 해당하는 이 곳은 북경에서 약 23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이다.
압록강에서 북경까지 약 2,300리, 북경에서 열하까지 약 700리, 육로 3천 리에 해당하는 먼 길에서 연암은 오랑캐라 무시하던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보며 강렬한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18세기 조선 사회가 겪고 있는 균열과 양반 사대부들의 위선, 실학을 무시하고 옛 문헌에만 사로잡혀 있는 봉건 사회에 대한 불만 들이 광범위하게 담겨 있어 새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연암의 간절함이 곳곳에 드러난다.
열하일기에는 철학, 정치, 경제, 천문, 지리, 풍속, 제도, 역사, 고적, 문화 등 사회 생활 전 영역에 걸친 문제들이 담겨 있다. 그 형식도 정통 논문부터, 편하게 쓴 수필 형식에 소설과 시화 형식까지 모두 동원하고 있다.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대국의 자연과 문화를 묘사하면서, 속상해하고 놀라워하는 연암. 책 곳곳에 숨어 있는 해학과 풍자는 연암 이전에 북경을 다녀왔던 그 어느 누구도 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반 선 라마에 대한 이야기는 연암의 기록이 유일무이한 것이며, 황교문답에 실린 이야기들은 청나라 사람들을 무시하던 당시 조선 관리들은 절대로 듣지 못했을 일급 비밀에 속하는 것들이었고,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논하고 있는 망양록이나 천체에 대한 놀라운 견해를 펼치고 있는 곡정필담 들에서 ‘이용후생학파’로 분류되는 연암의 선진적 사상들을 만날 수 있다.
딱딱한 이야기를 읽다가 예고도 없이 나타나는 연암의 장난끼에 한 번씩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것은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다.

2. 《열하일기》는 왜 금서가 되었는가?

열하에서 귀국하자마자 연암은 서울 살던 처남 이재성의 집과 황해도 연압골을 오가면서 《열하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780년 가을부터 1783년까지 썼다고 짐작되는데, 책을 완성하기도 전에 선비들은 두루 베껴 읽기에 바빴다.
이 전의 연행록이 대부분 평범하고 상투적으로 연행록, 연행잡록, 연행연기, 연행일기 따위 제목을 붙였던 데 반해 연암은 ‘열하’를 강조하기 위해 ‘열하일기’라는 생경한 제목을 붙였다. 탈고한 뒤에도 꾸준히 글을 고치거나, 새로 쓰거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랫동안 금서였던 까닭에 후세들이 연암의 기록에 덧붙인 내용들까지 함께 전해지고 있다. 보리의 《열하일기》에도 ‘중존씨는 말한다(처남 이재성)’, ‘연암씨는 이르노라’ 하고 덧붙인 글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열하일기》이전에도 북경에 다녀온 사람들이 기록한 연행록은 아주 많았다. 수많은 연행록 가운데 연암의 것이 특별한 까닭은 이 책이 담고 있는 ‘풍부한 견문과 진보적인 사상, 참신하고 사실적인 표현 기법(김명호)’ 덕분이다.
정조는 《열하일기》를 읽고 나서, 당시 지식인들의 문체가 순정치 못하게 된 것은 전부 박지원의 죄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당장 순수한 글을 지어 올리라고 명령했다. 당시 학자들의 문체는 고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는데,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의 감상이나 독창성보다는 얼마나 옛 문헌을 많이 알고 있어서 적재적소에 제대로 인용하고 담아 내느냐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소품체 문장이 들어오고, 가벼운 글쓰기가 널리 퍼지게 되자 정조는 선비들의 글이 더럽혀졌다며 문체를 정갈하게 쓰지 않는 이들의 문체를 바로잡는 일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연암과 연암의 제자들, 이덕무, 이서가 들이 특히 주목받았다. 정조가 남공철을 시켜 박지원에게 반성문을 쓰게 했으나, 박지원은 쓸 수 없다 요리조리 피하다가 1797년에 결국 ‘서이방익사’를 바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정 조가 아니더라도 양반 사회 일각에서도 《열하일기》는 ‘우스갯소리로 세상을 유희했다’ 혹은 ‘되놈의 연호를 쓴 되먹지 못한 글’이라는 평은 예사로 들었다. 하지만, 그런 평에도 《열하일기》는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으며, 글을 아는 식자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으려 애썼다.

3. 《열하일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1) 다양한 형식의 향연

《열 하일기》 이전에는 두 가지 형태의 연행록이 존재했다. 여정을 날짜 순으로 적는 일기 형식과 인물이나, 명소, 사건 들을 주제에 따라 항목별로 나누어 기술하는 체제가 그것이었다. 연암은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취하고 있다. 기존 연행록의 장점을 취하면서 독창적인 형식을 더해 여정은 날짜 순으로 정리하고 일기에 다 담기 힘든 중요한 사항들은 기記나 설說의 형식으로 독립시켜 놓았다.
《열 하일기》에서 두드러진 형식 가운데 하나는 필담. 열하에서 사귄 청나라 학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황교문답’, ‘망양록’, ‘곡정필담’에 담고, 성경의 상인들과 나눈 이야기를 ‘속재필담’, ‘상루필담’에 담았다. 사람들이 나눈 이야기를 생동감 있고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
다음으로 소초 형식. 하권에 실려 있는 ‘금료소초’는 평소 조선의 낙후된 의약 수준을 안타까워하던 연암이 왕사정의 《향조필기》 중 의약에 관한 내용을 초록하고, 거기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 것이다.
다음으로 이야기 형식. 상권에 있는 ‘범의 꾸중’이나 하권에 있는 ‘허생전’ 은 소설의 형식을 빌어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다 음으로 가벼운 수필체. ‘밤중에 고북구를 빠져서’ 같은 글이 그것인데, ‘하룻밤에 아홉 번 물을 건너서’나 ‘코끼리 이야기’ 같은 것은 지금 읽어도 그 뛰어난 묘사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일신수필은 장 전체가 ‘휘뚜루마뚜루’ 적어 내려간 가벼운 수필 형식을 빌리고 있다.
반면에 ‘수레 만든 법식’ 같은 글은 한 편의 논문을 보는 듯한데, 정론체 문장에다 해야 할 말을 꼼꼼하게 적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시화 형식. 하권의 ‘피서록’은 시에 관한 비평과 해설, 시인의 일화 따위를 단편적으로 적어 놓고 있다.

2) 살아 있는 인물 묘사

ꡒ 회회국 사람들은 얼굴이 사납고, 코가 크며, 눈은 푸르고, 머리와 수염이 억세다.” ꡒ몽고왕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체머리를 흔드는 것이 아무 보잘것이 없어 마치 장차 거꾸러지려는 나무 등걸 같다.” ꡒ파로회회도는 몽고인인데 자는 부재, 호는 화정이다. 나이는 47세인데 강희 황제의 외손자로서 키가 8척이요, 긴 수염이 축 늘어지고 얼굴은 여위고 누르스름했다.” ꡒ경순미의 자는 앙루요, 몽고 사람이다. 키는 7척이고 살빛은 희고 길게 찢어진 눈에 눈썹은 짙고 손가락은 파뿌리 같아서 미남자라 할 만했다.”
‘속재필담’과 ‘황교문답’에 실린 인물 묘사뿐만 아니라, 길을 가다 만난 이름 없는 노인이나 일곱 살 꼬마에 이르기까지 연암은 세심하게 관찰하고 글로 옮겼다.

3) 종횡무진 다양한 소재들

철 학, 정치, 경제, 천문, 지리, 풍속, 제도, 역사, 고적, 문화 등 사회 생활 전 영역에 걸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똥거름을 예찬하는 대목이나 수레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쓴 대목이나 청나라의 ‘캉’을 우리 온돌과 비교하는 대목은 실학자로서 연암이 특별히 관심을 쏟은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에 놀랍도록 자세하다.
거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나, 하늘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당시 연암이 관심을 갖고 공부한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음악을 주제로 얘기한 ‘망양록’에서나 갖가지 약방문을 적은 ‘금료소초’ , ‘골동 이야기’나 ‘열상화보’에 실은 각종 그림과 그릇들에 대한 관심까지, 연암은 책 속에서 다방면으로 종횡무진 움직이고 있다.

4. 보리 출판사의 《열하일기》는 무엇이 특별한가?

1) 북의 성과를 남이 잇는다.

고 전 문학을 되살리는 일에 오랫동안 애써 온 북한의 번역 성과를 남한에서 받아, 남한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출판했다. 이 방대한 양의 번역을 이미 1950년대에 끝내고, 몇 번의 교정 작업까지 거쳤다. 북의 성과를 남이 이어 받아 출판하는 이 《열하일기》는 갈라진 겨레의 통일에 기여하는 시금석이 되어 줄 것이다.
지금 현재 전하고 있는 《열하일기》는 누가 편집했느냐에 따라 조금씩 그 체계를 달리 하고 있는데, 필사본 9종과 신활자본 2종이다. 충남대본, 서울대본, 고도서본, 규장각본, 광문회본, 박영철본, 전남대본, 대만본 들이 있다. 리상호가 번역한 것은 1911년 조선광문회에서 <연암전집> 가운데 《열하일기》만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과, 한학자 김택영이 1900년과 1916년에 출판한 연암집을 묶어 후손들이 출판한 〈연암전집〉,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하였다. 보리에서는 1995년에 북에서 출판한 《박지원 작품집 2》를 상권의 판본으로 했고, 중권과 하권은 과거에 출판했던 책으로 작업했다.

2)남한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완역본이다!

민 족문화추진위에서 이가원 교수가 번역한 완역본으로 냈던 열하일기는 1967년에 초판을 찍고 1987년에 중판을 찍었으나 지금은 찾기 힘들고, 대양서적에서 펴낸 이가원 교수 완역본도 1973년에 처음 나온 이후로 독자들이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다.
윤재영이 번역해 박영사에서 1983년에 펴낸 완역본 역시 오래되어 구할 수가 없다.
솔 출판사에서 낸 것은 열하일기 가운데 압권이라 할 수 있는 일부부분만 담고 있으며, 그린비에서 펴낸 고미숙의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은 번역본이 아니라 해설서이므로 보리의 것과는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타 출판사에서 청소년이 보도록 편집한 것들도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출판사에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하여 만들어낸 책은 보리의 것이 유일하다.

3) 우리말을 잘 살려 쓰고 있다.

말 의 오염이 시작되기 전의 우리 글맛, 말맛이 살아 있고 박지원의 명랑함과 유쾌함을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잘 살려 냈다. 한문 문장인데도 읽기 힘들지 않은 입말로 번역해 놓았다. 찌꺽지, 자채기, 모꼬지, 물역 따위 북에 남아 있는 우리 말 또한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고 잔주르다, 덩둘하다, 날탕패 따위 토박이말들도 책 곳곳에 살아 있다.

4)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행 일정과 연보를 새로 정리했다.

책 끝에 박지원 연보와 열하일기 여행 일정을 새로 정리해서 넣었고, 상권에는 북의 학자 김하명의 상세한 작품 해설을, 하권에는 옮긴이 리상호가 쓴 글을 덧붙여 놓았다.
《열 하일기》는 남과 북의 공통 자산이다. 정치적으로 갈라지면서 학계도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연구 성과를 한데 모으지 못한 채 수십 년을 살았다. 북에서 연암 박지원의 작품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 두 편을 함께 실었다. 박지원을 ‘중세의 거인’이라고 한 리상호나 박지원 작품에서 양반 계급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특별한 문장력을 읽어 내는 날카로운 감식안을 지닌 김하명의 글은, 《열하일기》를 읽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보리 편집부에서 정리해서 덧붙인 ‘박지원 연보’는 열하일기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김명호 선생의 도움을 얻은 것인데, 정치적인 상황과 연암의 작품 창작 시기가 한데 적혀 있어 한눈에 연암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지도와 함께 따로 정리한 ‘여행 일정’은 방대한 《열하일기》를 읽기 전에 간단하게 연암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글쓴이와 옮긴이

글쓴이 박지원은 1737년에 나서 1805년까지 살았다.
반 남 박씨로 좋은 가문이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고 과거를 좋지 않게 보아, 신분을 벗어나 사람을 사귀며 공부를 하여 자신의 학문을 닦았다. 홍국영을 피해 황해도 금천의 연암골로 들어가 살며, ‘연암’이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다. 쉰 살 넘어 정조의 부름을 받고 선공감역, 안의현감 들을 지냈다.
홍대용과 깊이 사귀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들의 스승이자 벗이었다. 문학, 철학, 사회 사상, 행정, 과학, 음악 따위 두루 학식이 깊어 뛰어난 글을 많이 써 당대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양반전’, ‘범의 꾸중’을 비롯한 단편 소설 십여 편, 시 사십여 수, 농업과 토지 문제를 개혁하려는 사상을 쓴 ‘과농소초’, 여러 가지 문학론과 사회 개혁 사상, 편지글 들이 《열하일기》와 《연암집》에 담겨 있다.

옮긴이 리상호는 북에서 한 활동 일부만 알려져 있다.
1955 년에 《열하일기》 국역을 마쳤고, 1959년에는 《삼국유사》를 국역했다. 북녘의 고전 출간 사업은 모든 대중이 고전을 읽도록 한다는 원칙에 따른다. 리상호의 국역은 그러한 원칙을 따라 쉬운 우리말로 번역을 한 것 위에, 토박이 우리말을 잘 살려 쓰고 운율감이 배어 있게 하여, 이 《열하일기》가 빼어난 국역 문학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였다.
중 권

태학관에 머물면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경개록
황교문답
반선시말
찰십륜포
행재잡록
심세편
망양록
곡정필담
산장잡기
요술 구경
여행 일정
박지원 연보

미리보기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