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고전문학선집 18

옛 선비들이 밤낮으로 즐긴 재미난 이야기들, 패설집

거문고에 귀신이 붙었다고 야단

양장 | 152×223 mm | 568 쪽 | ISBN 9788984282407

역사라는 그물보다 이야기라는 그물이 더 촘촘하고 부드럽다. 역사가 위대한 것을 예찬하는 사이, 이야기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따뜻한 손길로 주워 담는다. 자유로운 글쓰기로 당대의 인물, 사건, 정보, 이야기를 넓디넓게 건져 올린다. 이 책에는《역옹패설》,《용재총화》들에서 고른 251편이 들어있다.

청소년~어른

펴낸날 2006-07-25 | 1판 | 글 성현, 어숙권 | 옮긴이 김찬순, 홍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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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설이 개척한 서사 장르 1 : 비판과 성찰의 글쓰기
고 려와 조선 시대의 패설집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부역 나간 남편에게 끼닛거리를 대려고 머리채를 끊어 판 안해 이야기(‘부역꾼의 안해’), 집안이 한미하여 붙었던 과거에서 떨어진 선비 이야기처럼 세태를 비판하는 이야기(‘붙었던 과거도 가문 때문에 떨어진다’)나 적서 차별 문제(‘서자 이숙의 한탄’), 과부 개가 금지를 비판하는 글(‘과부 딸을 개가시킨 것도 죄’)이 있다. 또 불우한 시대를 사는 선비 ‘가짜 장님 조운흘’, 관가의 물건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글(‘아우의 빨랫줄을 나무란 이극배’) 등이 있다.


패설이 개척한 서사 장르 2 : 인물 이야기
패설에는 인물 이야기가 많다. 역사책에는 실리지 않지만 의미있는 것들을 담는다. 이성계에게 패한 고려조 인사들을 다룬 ‘금 보기를 돌같이 한 최영 장군’‘이색의 울음’이나 황희가 고려 말에 숨어살 때의 일화인 ‘황희와 밭갈이하는 노인’ 들이 패설다운 인물 이야기이다. 역사책에서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은 여성과 천인에게 이어진다. ‘우리 나라 여자 예술가들’ ‘거문고 명수 이마지의 한숨’‘노비 출신 화가인 이상좌 부자’가 그러하다.
패설이 개척한 서사 장르 3 : 스토리성의 만개, 소설로 가는 다리
소 설의 선구적인 모습들이 패설에 들어 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외입쟁이’‘거문고에 귀신이 붙었다고 야단’‘자비심 모르는 멧돼지’‘광통교 선사가 언짢다면 좋은 법’ 처럼 재미나는 이야기가 있다. 민담과 서로 넘나드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놀리는 이야기의 중요한 갈래라 할, 스님 속인 상좌 이야기(‘스님 속인 상좌’‘상좌에게 속고 이 부러진 중’‘물 건너는 중’)나 ‘어리석은 사위’ 이야기 들이다.
또한 금오신화처럼 전기 소설에 근접한 이야기도 패설집에 자주 보인다(‘사천감과 귀녀’‘채생을 홀린 여인’).


패설이 개척한 서사 장르 4 : 정보 전달 글, 기록 기사문
패 설이라는 갈래가 넉넉한 푸대 자루 같은지라 다종 다양한 산문들이 이 패설 안에 포섭되어 있는데, 덕분에 정보 전달 글도 여기서 만나게 된다. 서울서 멀지 않은 행락지 정보를 읽노라면,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잘 아는 이라면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게 될 것이다. 과거 치르는 절차와 과장의 풍경을 보여주는 글이 있는가 하면, 동빙고 서빙고에서 얼음을 어떻게 떠 와서 보관하고 나누어 주는지 보여 주는 글도 있다. 경축 행사차 불꽃놀이를 벌이는 풍경, 광대놀음이나 악귀몰이하는 법을 사실대로 적은 글도 무척 흥미롭다. 패설집은 그 시대의 잡지 노릇을 한 것일지 모른다.
패설집 속 기사문 예 :
지리산 청학동/처용 놀이/불꽃놀이/악귀몰이/약밥의 유래/옛 도읍들/한성 안의 명승지/음악의 남용/사치스러운 혼례/뛰어오르는 물가/집현전에서 양성된 인재들/과거 보는 절차/연중행사/성종 때 펴낸 서적/기우제의 절차/언문과 언문청/활자의 발달/산채와 숭어의 어원/불교의 성쇠/여승이 있는 절/승문원의 새 청사/역대 작가와 저작집/향도들의 순후한 풍속/동서빙고의 얼음 저장/경비의 남용과 횡간/조선 안의 온천/훈장으로 출세한 사람들/중의 과거와 벼슬/독서당의 유래/문무관의 잔치/흰 사기와 그림 사기/세종 때의 종이 생산/삼포의 일본인(그 밖에도 아주 많다.)


어떤 책들에서 이야기를 골랐나?
고려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용재총화》를 비롯 여러 패설집에서 251편을 골랐다.《용재총화》는 조선 성종 때 성현(1439?1504)이 쓴 패설집으로, 고려 때부터 당대까지의 민간 풍속, 문물제도, 역사, 지리, 종교, 문학, 음악, 서화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쓴 책. 일화나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패관잡기》는 조선 명종 때 어숙권이 쓴 패설집으로, 조선 전기의 외교 관계, 야사와 풍속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설화를 풍성하게 담고 있다.
그 밖에, 《고려사》《파한집》《백운소설》《보한집》《역옹패설》《청파극담》《용천담적기》《송와잡설》《청강쇄어》 들에서도 골랐다.


패설 문학=패관 문학이란 무엇인가?
패설이라는 말의 어원은, 이제현의 《역옹패설》에서 기원한다.
“ ‘패稗’의 뜻을 따지면 ‘돌피’라는 말이다. 함부로 적어 놓은 글들을 기쁘게 뒤적거려 보나 아무 맺힌 것, 속살 있는 것이 없어서 그 하찮은 바가 돌피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한데 묶어 ‘패설稗說’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요즘 말로 하면 붓 가는 대로 끼적거린 수필 같은 셈이다. 어깨에 힘 빼고 자유롭게 쓴 글이다.



북의 학자 정홍교 선생이 쓴 해설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패 설은 봉건 시기에 봉건 통치배들 양반 사대부들에게서 멸시와 천대를 받아 왔지만 실제로는 중세 예술적 산문의 더없이 풍부한 원천이었으며 지나간 시대를 산 사람들의 곡절 많은 생활과 사상 감정, 당대 사회의 정치와 경제, 문화와 풍습, 도덕과 인정세태 등 시대와 생활의 진면모를 다양한 측면에서 생동하게 보여 주는 사료의 총서라고 할 수 있다.
하기에 패설을 보잘것없고 하찮은 글이라고 천시한 양반 선비들 자신이 패설에 깊은 관심을 돌렸고 또한 스스로 패설에 속하는 글들을 썼던 것이다. 이것은 패설이야말로 사람들에게 민족의 역사와 변천하는 시대의 추향을 알려 주고 생활의 교훈을 체득케 한 중세 산문 문학의 뗄 수 없는 중요한 구성 부분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예술적 산문의 풍부한 원천으로서의 패설의 문학사적 가치는 바로 산문 문학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소설 형식이 패설에서 갈라져 나오고 여행기, 수필, 실화, 사화, 야담, 시화, 시평 등 산문 문학의 다른 모든 형식들도 모두 중세기에 패설이란 이름으로 불려졌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알 수 있다.”
―정홍교의 ‘패설 문학에 관하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