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자주 쓰는 토박이말 아흔아홉 개와 한자말 한 개를 포함해 모두 백 마디 낱말을 풀이했다. 올림말의 뜻풀이는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가기도 하고, 말 속에 담긴 철학과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도 하고, 사전을 쓴 윤구병 선생의 삶을 길어 올리기도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보듯 정형화된 뜻풀이가 아니라, 사전을 집필하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 삶에서 얻은 깨달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새로운 사전이다. 나아가 누구나 자기만의 말로, 자기만의 생각으로 써내려간 ‘내 멋대로 자기 말 사전’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한다.
어른
펴낸날 2022-08-20 | | 글 윤구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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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공부로 시작된 우리말 백 마디 사전
달마다 한 번씩 우리말에 대하여, 철학에 대하여, 윤구병 선생이 살아온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부 모임에서 어느 날 윤구병 선생이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우리말 백 마디 멋대로 사전》초고 원고를 꺼내어 보였다. 2020년 5월, 윤구병 선생은 하루에 다섯 개씩 모두 20일 동안 낱말의 뜻을 공책에 풀어 썼다고 한다. 낱말마다 짧게는 반 쪽, 길게는 두 쪽까지 쓰여 있었다. 《우리말 백 마디 멋대로 사전》에 올림말로 올라간 낱말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토박이말 아흔아홉 개와 한자말이지만 우리가 꼭 쓸 수밖에 없는 낱말 한 개를 더해 모두 백 마디다. 윤구병 선생은 한글전용 잡지 《뿌리 깊은 나무》 편집장을 맡았으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일깨워 준 한창기, 이오덕, 권정생 선생과 큰 영향을 주고받았다. 팔십 평생 우리말을 갈고 닦고 되살리는 일을 해 온 윤구병 선생만이 길어 올릴 수 있는 이야기로 백 마디 낱말의 뜻풀이는 새롭게 풀어져 나온다.
❚ 사전을 만드는 사람의 생각과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사전
우리가 흔히 낱말 뜻을 알기 위해 찾아보는 ‘표준국어대사전’은 낱말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모두 뛰어넘어 고정된 것을 전제로 한다. 사전 만드는 사람은 백 년 전에도, 백 년 뒤에도 이렇게 고정된 뜻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사전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이 자기가 살면서 경험한 그 시간과 공간 안에서 길어 올린 말로 채워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말 백 마디 멋대로 사전》에는 이 사전을 써 내려간 윤구병 선생이 가진 우리말에 대한 깊은 사랑, 우리말로 평생을 벼려 온 철학, 쓰고 말하는 대로 실천해 온 윤구병 선생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대이름씨(대명사)나 꼴없는이름씨(추상명사)에는 우리말의 뿌리, 낱말의 쓰임새를 주로 담았다. 우리말 뿌리를 통해 새롭게 재해석할 수 있는 우리의 탄생 설화는 신비로우면서 흥미롭다. 그밖에 두루이름씨(보통명사), 움직씨(동사), 그림씨(형용사) 따위에는 윤구병 선생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 평생 동안 탐구해 온 철학 이야기가 한 낱말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풀려나오는가 하면, 윤구병 선생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자연과 생명의 본질, 삶의 실천과 성찰이 두루 담겨,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곱씹으면서 생각해야 할 화두를 던져 준다.
❚ 누구나 만드는 ‘내 멋대로 자기 말 사전’
윤구병 선생은 이 사전에 실리는 백 마디 낱말 가운데 일부는 선생의 삶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낱말로 가려 뽑았다. 그렇기에 이 사전에는 윤구병 선생의 생각과 삶이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다. 누군가가 정해 준 뜻풀이가 그 낱말의 유일한 뜻이 아니라, 그 낱말을 쓰는 이들이 풀어내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바로 그 낱말의 뜻이 될 수 있다. 자기만의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자기만의 생각, 자기만의 말을 만드는 것과 같다. 치열하게 살아온 삶에서 자기만의 낱말을 가려 뽑고, 그 낱말의 뜻풀이를 자기만의 이야기로 풀어쓴다면 그것이 나만의 사전, 내 멋대로 사전이 될 수 있다. 특히 자기만의 생각을 세우고 상상력을 키워 나가는 청소년들과, 삶의 전환기를 맞이할 청년들이 책을 읽고 ‘내 멋대로 자기 말 사전’을 쓰게 된다면 이 책의 쓰임새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 저자 소개
윤구병 | 글
1943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맏형 이름이 ‘일병’인데, 아홉 번째 막내로 태어나 ‘구병’이 되었다. 197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1981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가 되었고 1989년 ‘한국철학사상연구회’를 만들어 공동대표를 맡았다. 1983년 이오덕 선생의 권유로 대학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글쓰기연구회(지금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이 되었다. 1988년 어린이에게 줄 좋은 책을 출판하려고 ‘보리기획(지금 보리출판사)’을 만들었다. 1995년 변산에 자리를 잡아 변산공동체학교를 꾸리고, 1996년 대학교수를 그만두고서 농사꾼으로 살기 시작했다. 2016년 ‘우리말글살리는겨레모임’에서 ‘우리 말글 으뜸 지킴이’로 뽑혔다.
쓴 책으로 《잡초는 없다》《실험 학교 이야기》《철학을 다시 쓴다》《내 생애 첫 우리말》《꽃들은 검은 꿈을 꾼다》《특별 기고》《꿈꾸는 형이상학》 들이 있다. 〈달팽이 과학동화〉〈개똥이 그림책〉을 비롯해 ‘세밀화 도감’을 기획하고 펴내 어린이책의 새 지평을 열었으며, 남녘과 북녘의 학생들이 함께 보는 《보리 국어사전》을 기획하고 감수했다.
이성인 | 엮음
1980년부터 30여 년 넘게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고 한 해 동안 보리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우리말과 글쓰기 연구 모임에서 공부한다. 엮은 책으로는 《새롬이와 함께 일기쓰기》가 있다.
▮ 본문 중에서
우리말에서는 ‘그 사람, 그 남자, 그 여자, 그 아이’라고 하지 ‘그’나 ‘그녀’를 쓰지 않았다. 아니, 굳이 대이름씨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같은 글에서 똑같은 낱말이 되풀이되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영어와 달리 우리말은 똑같은 이름씨를 되풀이해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어색한 ‘그’나 ‘그녀’ 같은 말을 대신 쓸 필요가 없다._26쪽 올림말 ‘그’ 풀이말에서
날이 밝으면 어둠이 사라진다. ‘곰’(고마→하늘을 가리키던 옛말. 우리나라에서 건너가 일본말로 굳은 ‘가미’와 뿌리가 같다)은 남아 해와 짝을 이룰 수 있지만 ‘밤’(중세에는 ‘범’을 ‘밤’이라고 쓴 기록도 있고, 요즘 흔히 호랑이라고 하는 짐승은 한자어 ‘호랑’으로 바뀐 ‘범’을 가리킨다)은 새벽이 오면 멀리 달아난다. 환웅(환한 수컷, 해, 한자어로 태양신)이 고마(하늘)와 만나 짝을 이루어 단군왕검(박달잇검)을 낳았다. 여기에서 ‘박달잇검’을 ‘하늘을 이은(잇검) 박(밝)의 달(다, 딸, 땅)’로 새기면, 이 땅별의 탄생 설화가 된다._44쪽 올림말 ‘날’ 풀이말에서
‘다르다’는 ‘같다’와 짝을 이루고, ‘이것’이 ‘저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그리고 (무엇이) ‘아님’은 (무엇)‘임’과는 ‘달리’ 인도유럽어족에게 ‘있음’과 맞서는 ‘안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있음’은 ‘하나(1)임’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으므로, ‘안 있음’(우리말로 ‘없음’)은 그 안에 ‘빔(0)’이라는 뜻도 담고 있고, ‘여럿’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1)’가 아닌 것은 ‘없기(0)’도 하고 ‘여럿’이기도 하다._57쪽 올림말 ‘다르다’ 풀이말에서
사람이 만드는 것은 망가진다. 빨리 만드는 것은 빨리 망가지고, 더디게 만드는 것은 더디 망가지기도 하나 꼭 그렇지는 않다. 중세 우리말 ‘ᄆᆡᆼᄀᆞᆯ다’가 ‘만들다’로 바뀌었다. 사람 손을 탄 것, 만들어진 것, 다시 말해 ‘ᄆᆡᆼᄀᆞᄅᆞ’진 것은 ‘망그러지’기도 한다. 망가지기도 한다는 뜻이다._88쪽 올림말 ‘만들다’ 풀이말에서
‘설다’는 ‘익다’와 짝을 이루는 말이다. ‘밥이 설었다, 낯이 설다, 눈에(귀에) 설다, 설익은 감(땡감)’ ‘설었다’는 제대로 익지 않았다는 뜻이다. 무엇이 어떻게 설건, 선 것(설은 것)은 익은 것만 못하다. ‘서럽다’라는 말은 ‘설은 것같다’는 말에서 나왔을 것이다. ‘서러(설어)+ㅂ다’ ‘슬프다’는 말과 뜻이 비슷한 듯 보여도 말뿌리가 다르다. ‘슬프다’의 옛말 ‘슬타(슬+ㅎ+다)’는 ‘슬프다’와 ‘싫다’는 뜻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_129쪽 올림말 ‘설다’ 풀이말에서
나는 어렸을 적에 피난민으로 정부에서 지어준 단칸 쪽방에 살면서 이웃집에서 딸이 신행 왔다고 떡 쟁반을 들고 왔을 때, 그냥 돌려보내지 못하고 빈 그릇을 돌려줄 때 얼핏 보았던 아버지의 낯빛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노여움을 감추지 못해 흙빛으로 바뀐 굳고 일그러진 얼굴이었다(여느 때는 남에게서 무엇을 받았을 때 빈 그릇을 돌려주는 법이 없었던 아버지였다)._189~190쪽 올림말 ‘주다’ 풀이말에서
미리보기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