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 문학 전집> 넷째 권은 전기문학 《항전별곡》이다. 항일독립운동 시기 조선의용군 대원인 저자와 그 전우들이 몸소 겪은 일을 모두 다섯 편의 글로 기록했다. 영웅도 신화도 없는 사실 그대로를 꾸밈없이 적은 기록 문학이자 우리 민족의 역사인 셈이다. 원본 글과 함께 역사 인물들의 기록 사진을 본문에 실었고, 부록으로 역사 인물과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함께 실어 오늘날 그 당시 조선의용군 활동을 알고 싶은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독립운동의 중요한 사료로써 그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어른
펴낸날 2023-01-02 | | 글 김학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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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도 신화도 없는 조선의용군 전우들의
생생한 모습을 그린 전기문학
《항전별곡》은 항일전쟁 시기 저자와 전우들이 몸소 겪은 사실을 기록한 문학이다. <무명용사> <두름길> <작은아씨> <맹진나루> <항전별곡> 이렇게 다섯 가지 에피소드로 나누어 조선의용군 전우들의 항일 투쟁의 구체 체험을 다루고 있다. 의용군 설립 이전 개별적 무장 테러 활동, 군관학교 입학 이후 교육훈련과 생활 모습, 일본군과 벌인 전투와 항일 근거지인 태항산에서의 생활 등을 이야기한다. 저자 김학철은 전장에서 만들어지는 영웅이나 신화적인 인물보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과 평범한 전사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테면 군관학교에서 하루하루 되풀이되는 생활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개성 있는 인물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이상한 버릇과 습관,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긴장감 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어쩔 때는 용맹하며, 어쩔 때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소탈하며, 때로는 우둔하면서도 순수한 조선의용군을 한 사람 한 사람 생동감 있는 인물로 복원시켰다. 이는 저자 김학철이 전장에서 겼었던 실제 경험은 물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조선의용군 전우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서 비롯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책이다.
❚ 가리워진 우리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근현대사의 사료
《항전별곡》은 1930~1940년대 조선과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 인물들과 조선의용군 대원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역사적 사료로 그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그러나 1983년 흑룡강민족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될 당시 원문에는 약산 김원봉은 김원보로, 지대장 리익성은 리익선으로, 김두봉 선생은 김봉으로 쓰는 등, 역사인물들의 이름이 유사음으로 한 글자씩 더러 바뀌어 있다. 이는 책을 출간할 당시 정치적인 이유로 이 인물들에게 해가 가지 않을까 염려해 저자가 부러 이름을 한 글자씩 대치했기 때문이다. 보리에서 ‘김학철 문학 전집’을 새로이 펴내면서 저자가 쓴 유사음과 더불어 역사 인물의 본디 이름을 함께 병기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밖에 이번에 새로 책을 펴내면서, 조선의용군 활동을 꾸준히 연구해 온 계림 광서사범대학교 최봉춘 교수가 조사한 인물과 역사 사진들을 본문에 함께 실어 생생함을 더했고, 부록에서는 《항전별곡》 속 인물과 사건을 고증한 사료 연구 기록을 실었다. 이 자료가 당시 조선의용군 인물과 《항전별곡》을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또한 북경대학 박충록 교수의 글도 함께 덧붙여 독자들이 《항전별곡》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도록 했다.
❚ 유머와 낙천성으로 그려낸 항일 전기
언제 어느 때 빗발치는 총탄에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는 위기일발의 전장 생활이지만, 조선의용군 전우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특유의 장난기로 서로를 대한다. 그러한 에피소드들이 《항전별곡》 전편에 골고루 섞여 있다. 식전 기도를 하는 사이 전우의 반찬을 다 집어먹는 ‘반찬 소탕전’, 한 사람으로 시작해 중대 전체로 번진 ‘군모에 자라 그림 그리기’, 식사 시간에 술주정을 부린 ‘권식가’, 야맹증 전우를 밤 행군 때마다 물웅덩이 앞에서 골려 먹는 대원들 등 힘들기만 한 전쟁 시기를 유머와 익살, 희극성과 낙천성으로 채워 나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 김학철은 ‘혁명적 낙관주의자’로 불린다. 혁명적 낙관주의자 김학철이 복원해 낸 조선의용군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전통에 대한 긍지감으로 가득차게 할 때’가 바로 지금 드디어 왔다.
<김학철 문학 전집> 출간에 부쳐
항일 무장투쟁의 문학적 복원! 〈김학철 문학 전집〉 출시!
20세기 격정 시대를 살다 간 김학철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상을 집대성하다
광복 77주년을 맞아,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을 문학으로 만난다. 남북 분단으로 우리에게 잊힌 독립운동가 김학철은 민족 문학사의 커다란 산맥이기도 하다. 20세기 격정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김학철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상을 담은 문학 전집은 모두 12권으로 기획되어 앞으로 꾸준히 발간될 예정이다. 〈김학철 문학 전집〉의 첫 시작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의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 과정을 그린 자전적 장편소설 《격정시대》(모두 2권)과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이다.
남에서는 사회주의 단체라는 이유로, 북에서는 김일성 독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남과 북에서 모두에게 외면을 당한 조선의용대(군). 그들은 일제강점기 말 항일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이들이다.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은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동지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조선의용군의 활동과 투쟁을 진실하게 그려낸다. 어떤 거짓과 과장 없이 그저 있었던 일을 또렷이 기억해 내고 생생하게 써 내려간다. 그것이 바로 역사와 진실의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선 원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동안 원산총파업, 광주학생운동, 만보산 사건, 리재유 체포 등 굵직한 국내외 사건에 영향을 받아 독립투사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김학철. 일제에는 총으로, 독재에는 펜으로 끊임없이 저항하며 20세기 불의의 시대와 싸워 왔다. 김학철은 굽히지 않는 저항 정신과 혁명적 낙관주의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동안 국내에서 김학철의 작품은 1980년대부터 일부 소개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절판된 상황이라 안타까움이 컸다. 보리출판사에서 새롭게 출간하는 〈김학철 문학 전집〉은 민족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김학철의 문학과 삶을 온전히 복원하고 소개하는 작업이다. 국내에 여러 판본으로 소개되었던 《격정시대》를 첫 출발로 김학철이 남과 북, 그리고 중국에서 쓴 글을 모두 모아 전체 12권으로 선보인다. 우리 민족의 정신사와 문학사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이자 영원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학철 문학 전집〉 12권 목록
1권 | 격정시대 상
2권 | 격정시대 하 (장편소설)
3권 | 최후의 분대장 (자서전)
4권 | 항전별곡 (전기문학)
∎ 나의 길 (수필)
∎ 범람 (중단편 소설)
∎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 (수필)
∎ 천당과 지옥 사이 (수필)
∎ 추리구의 겨울 (수필)
∎ 태항산록 (소설, 수필)
∎ 해란강아 말하라 (장편소설)
∎ 20세기의 신화 (장편소설)
(* 전집 출간 순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 저자 소개
김학철(金學鐵) | 글
본명은 홍성걸(洪性杰). 1916년 조선 원산에서 태어나 서울 보성고보 재학 중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중국 상해로 탈출, 김원봉 휘하 의열단 반일 테러 활동에 가담,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조선의용대 창립 대원으로 항일 투쟁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194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1941년 태항산 호가장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 나가사키형무소에서 4년 동안 복역했다.
옥중에서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하고 1945년 일본이 투항하여 출옥했다. 서울에서 조선독립동맹에 참여, 단편 〈지네〉(1945년)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그 뒤 평양에서 〈로동신문〉 기자로 일하다가1950년부터 중국 북경 중앙문학연구소(소장 정령)에서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20세기의 신화》 필화사건으로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80년 복권되어 창작활동을 재개하고 2001년 9월 25일 연길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1954년), 《격정시대》(1986년), 《20세기의 신화》(1996년), 소설집 《무명소졸》(1989년), 《태항산록》(1989년), 산문집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1994년), 《나의 길》(1996년), 《우렁이 속 같은 세상》(2001년),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2002년), 전기문학 《항전별곡》(1983년),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1995년) 등 이 밖에도 많은 저서를 남겼다.
▮ ‘추천하는 말’
김학철 선생은 정통 사회주의자이고 인류가 가야 할 길은 사회주의라는 생각을 한 번도 버린 적 없다. 끝내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 사람이다.
내가 이런 김학철 선생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1948년 <담뱃국>이라는 소설이었다. 김학철 선생은 사회주의자이지만 그가 쓴 소설에서는 인간의 여러 가지 모습, 사람 사는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뒤 그 작품에 대해 서평을 쓴 인연으로 연변에서 김학철 선생을 여러 차례 만나게 되었다. 내가 본 김학철은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또 소설 쓰는 것을 매우 즐겨했다.
김학철 선생의 글은 한국 문학을 매우 풍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한국 문학의 한 갈래라고 본다. 그가 쓴 글들이 <김학철 문학 전집>으로 나온다니 참으로 기쁘다. 혁명적 낙관주의자 김학철 선생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_신경림 시인
한국의 보리출판사에서 <김학철 문학 전집> 전 12권이 출판된다고 합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김학철은 불요불굴의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가 평생 지향한 것은, 그의 말을 빌리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였습니다. 그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은 넉넉했던 팔로군 생활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에게는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사회주의는 있을 수 없고, 사회주의가 되려면 인간적이어야만 하는 것이었지요.
2001년, 김학철의 유해는 태어난 고향인 원산에 닿도록 두만강에 띄워 보내졌습니다. 원산에 닿은 유해는 한국에 와서 <김학철 문학 전집>으로 태어났고,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가서 <김학철 선집>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나아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건너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_오무라 마스오 와세다 대학 명예교수
김학철 선생이란 어른의 성함을 처음 들은 것은 1980년대이다. 내가 국회에서 선배로 모신 송지영 선생이 “김학철이란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스트이고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공산주의자이시지. 그분은 한 번도 지조를 꺾지 않으셨고 올곧은 그대로 삶을 사셨다.”고 소개했다.
최후의 독립군 분대장 김학철 선생은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가담해 태항산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총격을 당해 다리를 다치고 일본군에 붙잡혔다. 일본에 협조했다면 치료라도 제대로 받았을 테지만, 그것도 거부하여 평생 다리 하나가 없는 불구가 된 채 일본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김학철 선생은 전 생애를 레지스탕스로 일관하셨다. 그분이 누리고 바라는 삶은 간단하다. 필수품으로 원고지와 펜, 그리고 간단한 옷가지, 누울 자리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왜 우리는 마하트마 간디를 찾아야 하나? 우리의 스승은 바로 김학철 선생인데!
이제라도 김학철 선생의 작품을 모아 전집을 낸다고 하니 매우 반갑다. 김학철 선생의 해학과 유머가 있는 여유로운 필체를 독자들도 함께 느끼길 바란다.
_이종찬 우당교육문화재단 이사장
김학철이 없었다면 우리의 굴욕적인 식민지사의 한 부분은 어찌 되었을까. 그 굴욕이 한결 비참하고 수치스럽지 않았을까. 우리의 독립투쟁사 말기에 ‘조선의용대(군)’라는 다섯 글자가 박혀 있다. 그런데 그 독립군이 어떻게 결성되고, 어디서, 어떻게 싸웠는지 실체적인 명확한 기록이 없었다. 그 역사 망실의 위기를 막아낸 사람이 바로 김학철이다.
김학철은 바로 조선의용군의 《최후의 분대장》으로 싸우다가 왼쪽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가 썩어 들어가다가, 일본의 나가사키형무소까지 끌려가 결국 절단당하고 말았다.
그 후 그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외다리 인생’을 살아 내면서 총 대신 펜을 들고 문인의 삶을 개척했다. 그리고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고결한 영혼 속에서 탄생한 진솔한 작품이 바로 《격정시대》이다. 그는 그 소설을 통해 작가의 진정한 소임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작가는 민족사에 기여하고, 인류사를 보존해 가는 존재다.
이제 그분의 모든 작품들이 전집으로 묶여 우리 문학사에 크게 자리 잡으며 많은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기쁘고 보람스러운 일이다. 선생께서도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지으실 것이다
_조정래 소설가
▮ 본문 중에서
그날 밤 당 회의에서 김학무는 전원 북상해서 해방구로 들어갈 것을 강렬히 주장하였다.
“이런 가짜 항일 전선에 계속 머물러서 우리의 아까운 청춘을 허송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하고 김학무는 동지들에게 호소하듯 한 손을 앞으로 내밀고 엄숙한 얼굴들을 둘러보며 격앙해서 부르짖는 것이었다.
군관학교에서 서로 사귄 뒤 그가 그렇게 격동하는 것을 나는 이날 처음 보았다. 그의 평소의 상냥한 성품은 간데온데없어지고 그 대신 드러난 것은 마파람에 갈기를 휘날리며 버티고 선 수사자의 기백이었다.
“그래 이것도 항전입니까? 그래 이것도 혁명입니까? 우리는 팔짱을 끼고 앉아서 적이 제물로 거꾸러지기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적들을 쓸어 내뜨려야 합니다. 동지들, 나는 내일 당장 대홍산에다 사람을 보내서 요청할 것을 주장합니다. 견결히 주장합니다!”
_본문 50쪽
이 밖에도 조선 애국자들에 의한 테러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윤봉길은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대장 등 일본군 고위급 장령들을 살상하고 교수형을 당하였다. 리봉창은 도쿄에서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암살하려고 노부에 폭탄을 던진 것이 불발이 되어 대역죄로 역시 교수형을 당하였다. 석정은 서울에서 조선 총독을 암살하려다가 붙들려서 살인미수죄로 8년 동안 징역살이를 하고 나와서 항일 전쟁 시기 태항산에서 전사하였다……. 그것은 조선의애국 용사들이 바람같이 일고 구름같이 피는 세월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강병한이 뺨을 맞아 가면서도 혁명을 하겠다고 서두르지 않겠는가!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고들 하지 않는가.
_본문 73~74쪽
아득한 옛일을 돌이켜 보건대 우리 일대의 조선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날부터 일본 식민지의 노예였다. 중국 작가 서군의 말대로 ‘조국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부득불 어려서부터 일본말을 ‘국어’ 삼아 배워야 하였다. 당시 학교에서는 제 민족의 말을 하면 책벌을 받아야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중대의 학생들은 거의 다 일어에 능숙하였다. 하여 후일 항일의 전쟁 마당에서 우리는 그 노예의 낙인인 일어를 침략군에 대항하는 무기로 삼아 일본제국주의 강도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었다. 우리의 대적군 삐라 즉 종이탄도 적아 양군의 주고받는 철탄이 빗발치는 싸움터에서 무시 못 할 공훈을 세웠던 것이다.
_본문 110~111쪽
태항산에서 언젠가 한번은 무참하게 죽어서 피투성이가 된 전우의 시체를 구뎅이 파고 묻으면서 나는 근심스레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리들 중의 과연 몇 사람이나 살아서 이 피로 얼룩진 길을 끝까지 갈 것인가? 만약 불타는 분노와 필승의 신념이 없었다면 그 길고 긴 나날에 내내 가시덤불 속을 헤치고 걸으면서 어떻게 회심과 실망을 이겨 낼 수 있었겠는가.’
나는 혁명자를 마치 타고난 천재처럼, 초인간처럼, 그 언제나 낙관적 정신이 포만한 신적 존재로 묘사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최소한 내 전우들 중에서는 그런 굉장한 인물을 보지 못하였다.
_본문 140~142쪽
추천사
한국판에 부쳐
무명용사
두름길
작은아씨
맹진나루
항전별곡
《항전별곡》을 내놓으면서
미주
부록
《항전별곡》 인물, 사건 고증 _최봉춘
우리 겨레 항일의 엘리트들 _박충록
김학철 연보
미리보기 준비 중입니다.